바다, 조화, 안녕

잡설 2009. 12. 31. 23:47

나에게 바다를 묻는다면, 작년 여름의 남해가 떠오르고, 비록 바닷가는 아니었지만 서로 어긋나지만 조화를 이루던 그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그 곳은 작은 미술관이었다. 적막 속에서 우뚝 서있는 바람개비는 자연에 몸을 맡겨 느릿느릿 돌아가고, 그 움직임에 맞추어 적막을 깨는 청아한 종소리. 그것이야말로 조화였다. 바람개비들의 회전은 서로 엇나갔지만 결국 그 경관은 조화로 귀결되었다.

우린 조화를 꿈꿨었다. 아니 정확힌 너였다. 너는 조화를 꿈꾸었고 나는 변화를 꿈꾸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어긋나고 있었다. 남해의 바람개비와 종소리, 바람과 강물이 이루던 조화와 달리 우리는 조화를 이루는 지점을 벗어나 서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한 점에서 만난 직선이 평면 위에서 다시는 만나지 않듯이,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서로가 희미해지는 곳으로 갔다.

그래도 넌 날 계속 보고 있었는가보다. 희미해져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나보다. 하지만 난 희미해지는 널 시야에서 놓쳤다 생각하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것은 나의 죄악이었다. 아직도 가슴에 새겨져 있는 죄의 낙인은 그날의 내 행동을 선명하게 내 뇌리에 각인시킨다. 그렇게 나는 결국 다른 곳을 바라보고 너와 영원히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조화를 꿈꾸었던 너에게 변화를 강요했고, 그렇게 어긋나기 시작한 이후로 그 어긋남을 사랑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던 너와, 어긋났기 때문에 사랑을 잃어버린 나는 결국 남남이 되고 말았다. 그 이후의 이야긴 다시 후회하고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가려 했던 나와, 현실을 인지하고 흐릿해진 나를 지워버린 너, 더이상 내가 보이지 않는 너와, 너만 보이던 시절을 바라보고만 있는 나 의 장면으로만 구성되어져 있을 뿐, 다른 이야기는 없다.

바다가 보고싶다. 과거의 바다는 후회로 넘실대고 있기에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두렵다. 후회의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봐. 현재의 바다가 보고싶다. 거기서 자연의 조화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고, 나를 느끼고 싶다.
안녕을 외치고 다시 안녕을 외쳐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고 싶다.
그땐
네가 말했던 조화를 언제나 명심하며 살 수 있을 듯 하다
Posted by 다크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