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텅빈 샤워실에서
하얀 김 뭉개뭉개 피어나는
뜨거운 물을 맞이할 때
잠시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새벽 동이 틀 무렵까지
살갗에 닿는 찬 공기 느끼며
밤새 걷고 걸었던
빛 하나 없던 밤길
함께있음은
찬 공기도, 불빛 없는 어둠마저도
아무 상관 없는 그저 사실로 만들어버렸고
아무도 일어나지 않던
주말 새벽
조용히 들어와
샤워실에서 틀었던
그 뜨거운 물 방울 방울
별다른 추억이 없는 너와의 이야기 속에서도
아직 하나 기억에 남아있는
살이 기억하는 촉각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