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

카테고리 없음 2020. 8. 11. 19:37

아드님은 유치원에 가고, 아내는 일하러 간 뒤 홀로 방학인 나는 혼자 집에 남았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벌써 나흘 째다. 혼자 집에 있는 동안 여러 가지를 했다. 집 청소를 마음먹고 했고, 시간이 날 때면 근처 구립도서관에 잠시 들려 아드님 읽을 책과 내가 읽을 책을 빌려왔다. 개학 전 준비도 틈틈이 해놓고 있다. 아내를 위해 요리도 간단하게나마 했었고, 설거지와 빨래 개는 일도 틈틈이 해놓았다. 오늘은 자동차 검사를 받은 뒤 도서관에 들렸다가 음악을 들으며 빌려온 책을 읽었다. 그리고 아드님을 데리러 가기 전 남는 시간을 틈타 잠시 이렇게 글을 쓴다.

 

아내는 퇴근 후에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드님이 잠들기 직전에야 들어와서는 나를 계속 없는 사람 취급하며 거실에서 넷플릭스를 본다.

 

이해를 바라는 마음은 이미 내려놓았다. 대화를 하면 소통이 되고, 소통 속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박수도 양 손바닥이 마주쳐야만 소리가 난다. 한쪽 손바닥으론 아무리 노력해도 소리낼 수 없는 법이다.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이해를 바란다는 건 너무 무리한 기대였겠지.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한동안 나를 괴롭게 했지만, 이젠 그 마음마저 놓아두기로 했다. 그럴 수도 있을테니까. 자신조차도 스스로 보듬지 못하는 사람에게 타인의 이해까지 바라는 건 너무나 무리한 일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도 상처받지 않고 내가 할 일을 하는 것 뿐. 책임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나를 차갑게 대하는 사람까지도 이해하고 존중하고자 노력하는 것 밖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얼어붙었던 마음이 풀리고 문을 열고 나와 대화를 하고자 한다면 받아줄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 하더라도 괜찮게 지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겠지. 그 동안 아드님이 상처받지 않게 최선을 다해 내 마음으로 아드님을 대하면 될 것이라 믿어본다.

내가 그렇게 큰 미움을 받을 만큼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는 걸 나도, 그녀도 다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나를 미워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 미움과 차가움과 가시박힌 말투, 표정까지도 모두 끌어안고 갈 생각이다. 감정의 쓰레기통이란 표현 대신, 눈물을 마시는 새라는 말을 쓰고 싶다. 마침, 이영도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으니 말이다.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저녁을 미리 준비해놓고, 늦지 않게 출발해야겠다.

 

아무리 메마른 땅일지라도 언젠가 비는 내리고, 그 잠시동안의 비는 잠자고 있는 씨앗의 싹을 틔우게 한다. 매마르더라도 희망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Posted by 다크샤인